한국 미술사에서 비운의 화가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이중섭의 삶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고독하고 외로웠습니다. 약 300여 점가량으로 알려진 이중섭에 작품에 어린이가 많은 것도 가족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외에도 소와 연꽃 등 전통적인 소재들이 많습니다. 이런 소재들을 다양한 기법으로 표현하며 예술가 개인의 고통과 절망을 담고 있는 것이죠.
이중섭의 대표작이라고 하면, 대부분 앞서 언급한 ‘소’ 시리즈를 떠올리실 것 같습니다. 소를 표현하고 있는 강렬한 선은 예술가의 고뇌는 물론, 개인의 갈망과 광기 등을 전부 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평론가들은 이중섭의 표현한 ‘소’는 단순한 소가 아니라 화가의 분신이며, 자신의 내면을 폭발적으로 담고 있는 것이라는 말을 주로 사용합니다. 고뇌를 뛰어넘는 희망과 의지, 힘 같은 것도 복합적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것이죠.
이외에도 이중섭의 작품을 이야기할 때는 자유로운 선과 그 강렬함을 특징으로 꼽는데, 이런 점을 도드라지게 보여주는게 흔히 은지화라고 부르는 담뱃값에 그린 그림들입니다. 경제적 궁핍에도 예술을 포기하지 않았던 화가의 의지를 엿볼 수 있어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주죠. 1950년대는 이중섭이라는 개인에게는 너무나 외롭고 고달픈 해였지만, 예술가로의 재능을 가장 화려하게 꽃핀 시기인 것입니다.
이중섭은 타계 이후 한국 미술계에 더욱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본격적인 회고전이 열린 것은 1970년대 이후인데, 1980년대 중반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엔 10만 명이 넘는 관객이 몰리며 단번에 스타 작가로 등극하죠.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위작 논란에 시달리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론 이중섭의 작품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가장 많습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 등 혼란의 역사를 겪으면서 이중섭이라는 작가에 대한 기록들은 제대로 정리되지 못했죠. 예술가라는 무게를 견디며 살아왔을 이중섭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